[출처] 경향신문_문화_2016. 10. 21.
세네카, 삶과 앎이 분리된 학교를 한탄하다…
우린 어떤가
문제는 학교 교육
결국은 학교 교육이 문제였다. 로마인들이 자식들의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작고 우연한 사고에서 비롯되었다. ‘문(법)학을 로마에 처음으로 도입한 사람은 아마도 아리스타르쿠스의 학문적 맞수였던 크라테스 말로테스였다. (…) 그는 (로마 근교의) 팔라티움의 하수구에 빠지면서 그만 정강이가 부러졌다고 한다. 그는 사절 기간, 부러진 다리가 다시 이어지는 동안에도 내내 많은 청중을 대상으로 성실하게 또 지속적으로 강의를 했고, 이것이 우리 로마인이 모방하게 되는 선례가 되었다(<로마의 문법학자들>).’ 그리스 방식의 학교가 로마에 도입된 것은 스토아 철학의 대가였던 크라테스(기원전 3세기)의 부러진 다리 덕분인 셈이다.
로마의 교육 열풍, 대치동과 닮아
우연이든 필연이든 이렇게 촉발된 로마인들의 교육열은 ‘점입가경’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후끈 달아올랐다고 한다. 수에토니우스(70~122년)의 말이다. ‘이후 문(법)학에 대한 호의와 관심이 높아져 갔는데, 저명한 인사들도 자신들이 문(법)학에 대해 뭔가를 저술하는 것을 꺼려 하지 않았다. 문(법)학을 배우려는 학생들로 가득찬 문(법)학 학교가 20곳이 넘게 성업했던 시기가 로마에 있었다고 전한다. 문(법)학 선생들의 몸값과 강의료도 천정부지에 이르렀다고 한다(<로마의 문법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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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학교 교육 비판에서 탄생
사정이 이쯤 되면, 삶과 앎의 분리가 가져오는 문제점, 즉 ‘지행합일(知行合一)’의 문제, 다시 말해 교육의 본질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들을 던지는 시람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로마의 경우 그 시작을 알린 사람이 키케로(기원전 106~43년)다. 그는 문법학·논리학·수사학 같은 개별 학문들에 대한 학문체계를 가르치고 배운다고 해서 과연 사람이 행복해지고 공동체가 번성할 수 있는지, 나아가 교육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지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날카로운 물음을 던졌다. 그는 수사학의 발견, 배치, 표현, 기억, 전달과 개념들을 잘 안다고 해서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의분을 느껴야 하는 상황에서 이론적으로 “분노란 마음의 격동 혹은 복수를 통해서 자신의 화를 치료하고 보상하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정의내릴 줄 안다고 해서, 그러니까 어떤 이가 분노의 의미를 개념적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해서 그가 그 분노가 요구하는 실천으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반대로 어떤 이가 분노가 무엇인지를 개념적으로 정의내리지 못한다 해서 그 사람이 화를 내지 않은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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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민들을 통해 선정된 책들을 학교에서 읽고 따지는 것이 교육의 기본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른바 ‘고전(classica)’ 읽기 교육이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결국 인문학과 고전 교육의 탄생은 당시 로마의 잘못된 학교 교육에 대한 비판, 대안에서 나온 것이다.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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