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_경제 IT_2017. 5. 15.
모든 사물이 소통…인간위주 넘어선
새로운 인터넷윤리 필요
사람간 통신위해 설계된 인터넷구조
사물인터넷 되면서 새로운 문제 노출
모든 게 연결되면서 프라이버시 위협
책임 범위도 혼란…새 규약 만들어야
빈트 서프 ’사물인터넷 윤리’ 논의 요청
미국의 인터넷 상거래 업체 아마존은 2014년 출시한 인공지능 기반의 음성인식 스피커 에코를 업그레이드한 새 모델 ‘에코 쇼’(Echo Show)를 지난 9일 선보였다. 터치스크린과 8개의 마이크, 카메라가 탑재돼 음성 명령한 것을 화면으로 볼 수 있고 각종 기기와 연결해 작동시킬 수 있어 사물인터넷과 스마트홈 기기로 활용될 수 있다. “알렉사, 현관 카메라 비춰봐”, “알렉사, 아기 방 보여줘” 식으로 “알렉사”라는 활성화 명령으로 작동한다.
미국의 스마트홈 기기 업체인 라이트하우스는 지난 11일 원격으로 작동하는 인공지능 기반의 가정용 보안시스템 판매에 나섰다. 1년에 399달러를 내면, 라이트하우스가 설치된 장소 주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스마트폰 앱으로 손쉽게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이 기기는 얼굴인식 카메라를 통해 사람을 식별하고 행동을 분석한다. “내가 어제 오후 외출했던 시간에 현관 앞에 택배 놓고 간 사람이 누구야?” “아이들이 학교 가기 전에 집에서 뭐 했어?”라고 물어보면 저장된 영상을 분석해, 찾는 내용을 영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세계 최대의 유통업체 월마트는 세제가 바닥나거나 우유의 유통기한이 만료하는 시점을 자동으로 감지할 수 있는 태그와 센서 기능에 관한 특허를 출원한 사실이 지난주 미국 특허법원을 통해 공개됐다. 청바지나 속옷에 태그를 달면 몇 회 세탁 이후 옷감이 해지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이 분야에서 앞서가고 있는 아마존과 타깃 등의 업체가 보유한 자동주문 기능에 사물인터넷 기술을 활용한 기능으로, 구매자별 상품 소비 성향과 사용 패턴을 분석해 자동주문과 품질 향상에 사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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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오늘날 인터넷의 통신규약(TCP/IP)을 설계해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빈트 서프 구글 부회장은 최근 프랜신 버먼 렌설리어공대 교수와 함께 쓴 논문에서 “사물인터넷에 적합한 새로운 윤리강령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물인터넷은 획기적인 효율성과 편리함, 기회 증대를 가져오지만 동시에 잘못 쓰이면 걷잡을 수 없는 피해와 예상치 못한 재앙을 가져오는 ‘판도라의 상자’일 수 있다.
그는 사물인터넷 환경의 핵심적인 정책 요소로 3가지를 제시했다. 첫째는 프라이버시다. 사물인터넷 환경에서 개인들이 어떠한 프라이버시 권리를 갖는지 파악하고 합의하는 게 필요하다. 둘째, 책임 소재다. 자율주행차처럼 자동화 시스템으로 결정이 이뤄지거나 운영되는 사물인터넷에서 사고나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 범위가 어디까지이고 제조기업, 사용자, 플랫폼 운영자, 관리당국 등이 어떻게 책임을 공유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셋째는 사물인터넷의 윤리강령이다. 기술은 윤리적이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활용되느냐에 따라 좋은 결과가 될 수도, 나쁜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서프는 공상과학 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가 제시한 로봇 3원칙처럼 사물인터넷 환경에 적합한 새로운 윤리체계와 사회적 규약을 만들기 위해 논의와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터넷을 설계한 빈트 서프가 사물인터넷 시대에는 기술 자체보다 기술을 통제할 수 있는 거버넌스 구조와 윤리강령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의미가 깊다. 인터넷은 애초 미국 일부 대학과 연구기관에 있는 제한된 전문가들 사이의 정보공유 네트워크로 설계돼 출발했지만 1990년대 월드와이드웹 덕분에 모두를 위한 대중적 범용 네트워크로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이는 인터넷 초기 설계자들에게 보람과 함께 안전성과 악용에 대한 뒤늦은 회한을 안겼다. 사물인터넷은 인터넷을 사람 위주의 통신에서 사물 위주의 네트워크로 다시 한번 변모시키고 있다. 뒤늦은 후회가 되지 않도록 사물인터넷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기술의 책임과 영향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대비가 요구되고 있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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