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매일경제_사회_2017. 5. 7.
`로봇 사피엔스`와 경쟁시대…
대학 학과·서열 무너뜨려야
■ 신성철 카이스트 총장에게 듣는 4차 산업혁명시대 교육개혁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공지능은 인간의 출셋길을 점령할 것이다. 소위 ‘현대판 벼슬’이라고 여겨졌던 박사, 의사, 판사, 엔지니어 등으로 향하는 길은 기계에 대체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해 우리 교육기관들은 미래 인재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신성철 카이스트 총장은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이제까지 개인적 성공으로 받아들여졌던 직업들은 인공지능이 빠르게 대체해 나갈 것”이라며 “인간에게는 성공 지향적 교육이 아니라 사회적가치를 창조하는 교육이 더욱 요구되고 있다”고 말했다. 과학자만 보더라도 ‘노벨상’이라는 성과를 중심으로 한 압박형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하지만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하게 인간 과학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인류의 지적 시야를 넓히겠다는 ‘가치’이다. 신 총장은 “과학자들에게 돌아오는 노벨상, 기술 이전료, 기술 발명 등의 성과는 부산물일 뿐”이라며 “한국이라는 좁은 무대를 넘어 세계와 인류사적인 기여를 하겠다는 큰 가치와 꿈을 교육자들이 안겨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카이스트 역시 지금처럼 안주하고 있으면 영원히 추격자에만 머무를 뿐 사회에 임팩트를 주는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없게 된다”며 “그러면 카이스트가 존재할 이유 또한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교육 혁신이 중요한 이유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교육 혁신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선진국 대학 총장들도 모두 고민하는 이슈다. 독일 인더스트리 4.0의 아버지이자 공학한림원 회장인 헤닝 카거만에게 물어봤더니 그들도 이 문제에 대한 뚜렷한 대답은 못했다. 현재 태동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기에 인재 교육 문제에 대한 해답의 깊이는 한국과 독일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잘 치고 나가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선도국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교육 문제가 정말 중요하다.
―한국에 필요한 교육 혁신은.
앞으로는 모든 기술이 융복합될 것이다. 사물인터넷과 ‘5G 기술’이 구현되는 2050년께는 모든 게 광속도로 연결될 것이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으로 인간을 능가하는 초지능이 도래할 것이다. 이런 세상을 바라보고 교육을 생각하면 답이 보인다. 학문의 융복합이다. 오늘날 산업현장에서 제기되는 다양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한 학과에서만 나오는 지식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하다. 진정한 해답을 찾는 데 학과 간 경계는 무의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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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로 융복합 교육이 가능한가.
DGIST에는 지금 학과가 없다. 카이스트도 내년부터 무(無)학과 선언을 할 것이다. 현재 카이스트는 1학년 때 학과가 없고 2학년부터 전공을 선택한다. 이런 제도를 바꿔서 2학년 이후 융합기초학과를 만들어 융합학사 학위를 주겠다는 것이다. 융합 이학사, 융합 공학사 등으로 전공을 크게 나누는 것이다.
―융복합 인재 양성 제도가 갖는 의미는.
기초교육을 강화한다는 뜻이다. 앞으로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급격하기 때문에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 쫓아가기도 어렵다. 게다가 우리는 이제까지 선진국의 기술과 연구 결과를 따라가기에 급급했다. 성과를 중시하는 구조로는 이를 따라잡기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도적 지위에 서려면 기초 없이는 불가능하다. 융복합 인재를 키우려면 물리, 수학, 화학, 생물 같은 기초과학은 물론이고 컴퓨터 코딩, 빅데이터, 자동제어 등과 같은 기초공학의 중요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융복합 교육이 갖는 또 한 가지 의미가 있다. 이런 기초과학, 기초공학교육들은 주로 좌뇌 교육이다. 하지만 진정한 융복합이 되려면 우뇌 교육도 필요하다. 인문·사회·감성 교육과 같은 통섭 교육도 이뤄져야 한다. 사회에 가치를 주기 위해서는 과학자들이 기업을 만들고 가치를 환원해 나가기 위한 기업가 정신과 리더십 교육도 중요하다. 오늘날 인간에게는 성공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교육이 더욱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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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졸업장과 성적이 무의미하면 개인의 능력은 무엇으로 판단해야 하는가.
순발력과 창의력, 그리고 협업이다. 변화에 얼마나 잘 적응하면서 그 상황 속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며, 주변의 창의적인 인재들과 협업으로 시너지 효과를 얼마나 잘 내느냐다. 이렇게 놓고 보면 세 가지 능력 모두 기초적인 체력이다. 결국 교육이 (성과가 아니라) 기초적인 체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얘기다. 융합형 전공을 해야 하는 이유도 거꾸로 보면 기초를 강화하자는 취지다. 세부 전공 측면에서는 약할 수 있지만 기초가 튼튼하면 학업이 훨씬 수월할 것이고, 연구에서도 탁월함을 드러낼 것이다.
―교육의 커리큘럼도 달라져야 하나.
교재도 융복합의 철학에 맞게 다시 써야 한다. 많은 대학이 현재 자유전공제를 하고 있지만 문제점이 있다. 세부 전공 커리큘럼을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역학과 양자역학의 구분은 세부적인 전공의 차이일 뿐이다. 양자역학이 거시적으로 보면 역학이 된다. 전자기학과 상대성이론은 같이 가르치면 된다. 그러면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이처럼 새로운 융복합 교재들이 필요하다.
―교수법도 달라져야 할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멘토다. 단순한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학생들의 학습을 설계해 주어야 한다. 교육자들은 협업을 하는 태도 역시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서열 경쟁사회다. 시험을 보고 나면 1등부터 일렬로 줄을 세우고, 사회는 1등에게 조명을 쏜다. 이런 서열들이 협업을 단절시킨다. 내 옆에 있는 학생들이 경쟁자가 아니라 협력의 상대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5명의 학생에게 2명의 서로 다른 전공 교수가 붙어서 협업의 중요성과 소양을 가르치는 것이다. 내년 신입생들부터 이 프로그램을 공지할 계획이다.
■ 온라인교육 ‘KOOC’ 전 국민에 개방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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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철 총장은 이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장과 대화를 하다가 답을 얻었다”고 했다.
이스라엘은 우리나라보다 연구비가 5분의 1에 불과하지만 사이버안보 등 뛰어난 연구 성과를 보이는 분야가 많다. 당시 신 총장이 ‘이스라엘의 비결이 뭐냐’고 물으니 ‘전략이 없는 게 전략’이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특정한 연구 분야를 ‘톱다운’으로 내려보내는 전략을 쓰지 않고, 대신 제일 잘하는 연구자를 보텀업으로 공무원들이 파악해서 지속적으로 연구를 지원했다는 것이다. 신 총장은 “연구 분야 중심의 투자에서 연구자 중심의 투자로 패러다임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려면 위험 부담이 있으니 장기적인 투자를 함께하면서 도전적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감사원 감사와 공무원 부처 내 감사·견제 때문에 가능성이 있는 연구들이 묻혀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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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산업화 태동기 때 카이스트의 존재 가치가 정립됐다면 그곳에서 교육을 받았던 동문이 카이스트의 새로운 존재 가치를 제시하려 한다”며 “4차 산업혁명 태동기에 카이스트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카이스트는 오늘날 대학들이 개방하고 있는 MOOC를 적용한 KOOC(KAIST Massive Open Online Course)를 운영하고 있다. 신 총장은 “KOOC를 전 국민에게 오픈하겠다”며 “카이스트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사회에 기여하는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용범 기자 / 신현규 기자 /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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